제목

의학이 지켜야할 노블레스 오블리주.

부와 권력과 명성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그러한 책임은 내면에서 의무감으로 승화해 사회로 향해야 하고 사회로 향한 솔선수범은 온전히 일반 통행

이어야 한다. 그에 대한 대가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노블레스를 품어낸 사회적 토양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

오블리주. 자신들을 품어낸 토양에 내려 땅이 내일을 품어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배운 자는 가르쳐야  하고 가진 자는 나누어야 한다.

자신들을 가르치고 길러준 사회에 자신의 것을 나눔으로써 사회가 배울수 있에 해야 한다.

자신의 부를 만들어준 사회에 자신의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빈 곳을 채워 넣어야 한다. 그리하여 사회가 스스

로 할 수 없는 부와 지식의 능동적 재분배를 이루어가야 한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고,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는 자에게 권력이 따라온다.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겨나고 알고 있는 것 때문에 배타적인 권리가 생겨난다.

가진 것과 알고 있는 것이 만들어내는 권력, 능동적 재 분배에 대한 인식과 권력행위에 대한 도덕성이 전제

되지 않으면 이 권력이 무소불위로 흐르게 된다.

 

무소불위로 흐른 권력은 가진 자와 배운 자의 입지를 더 탄탄하게 만들고 사회를 양극화 시킨다. 의무감과

도덕성이 동반되지 않은 권력은 타인에 대한 지배력이 되고, 지배력을 가진 자들은 세력을 형성해 사회를

압박한다. 권력의 지배 아래에서 사회는 질식하고 권력의 통제 아래에서 계급은 고착화된다. 순환 없는 사회

가 되고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이 만들어지며 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이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권력은 부패하고 소모품은 탈진하며 사회는 붕괴된다.

 

권좌에 오르면 낮은 자리에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고 낮은 자리에서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알게 된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보이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 지도 보이고 무엇을 더해야 사회가 원활하게 흐를 수 있는

지도 보인다. 그런데 그러한 개선이 자신의 이익과 맞설 때 권력은 어떤 선택을 할까 ?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망각한 권력은 상처를 덮고 빈 곳을 가리며 물러서야 할 곳에서도 앞으로 내 딛는다.

 

살아가는 곳곳이 권력이다.

이러한 권력들은 때론 직렬로 때론 병렬로 연결되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그들만의 입지를 굳힌다.

정치판에는 정치권력이 있고, 상업을 하는 곳에는 경제권력이 있고,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에는 교육권력이

있고, 의학에는 의료권력이 있다.

 

겉보기에 의료권력은 의사들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 시대의 의료권력이 자본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금방 알수 있다.

의사들은  의료권력의 통로로 이용되는 소모품일 뿐, 이 시대의 의학은 자본의 소유물이 되어 있다.

자본의 눈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약을 약이라 말할 수 없고, 환자를 치료해 내도 치료약으로 만들어낼 길이

없는 것이 오늘날 의학이 처해 있는 현실이다.

 

자본은 의학의 점령군이 되었다. 거기에 미국식 의학이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미국식 서양의학은 자본이 들어서며 파이를 키운 전형적인 자본 의학이다.

환자들의 눈에 보이는 의학의 문제점들이 의료권력으로 전해져서 의학의 시스템이 바로 잡혀야 했는데,

미국의 의료권력은 자본의 조정으로 누수되고 있는 시스템을 묵인한 채 파이를 키웠다.

 

의료권력 속으로 들어선 자본은 그들의 몫을 요구했고, 그 몫은 점점 커져만 갔다. 자본과 권력은 나누어야

할때 더 가지려 했고, 그 값은 사회가 치렀다. 사회가 그 값을 치러내지 못할 때 구성원들이 고통 속에 빠져들게 된다.

자본과 권력의 뒤치다꺼리를 민초가 하게 된다. 한계에 부딪친 미국정부는 의학에 대한 연방의 의료보조를 삭감하고 있고,

미국인 중 약 4천만 명은 의료보험 없는 사각지대에 머문 채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는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미국식 자본이 만들어낸 의학은 이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의사들도 가운을 벗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 두려움을 공유한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마법의 고리, 이것이

미국 의학의 현실이다. 미국의 자본과 권력은 자신들의 이익을 담보로 의학과 의료체계를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로 이끌었고, 이제 사회는 이를 받아들일 여력을 잃어버렸다.

 

의사들도 인도주의와 사랑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만들어졌다. 이 벽을 걷어내기 위해 모든 분야 권력

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요구되고 있는 현실, 이것이 세상의 의학을 선도하고 있다는 미국식 서양의학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사용자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공급자의 요구가 막후에 들어서며 의학을 독점했다

이제 그 폐해는 자본과 권력을 제외한 모두가 나누어 짊어지고 있다.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서울대학를 들어섰던 것이 1984년이다.

나는 아직도 예과 1학년 시절의 한 장면을 잊지 못한다.

 

"소의는 사람의 병을 고치고, 중의는 사람을 고치고, 대의는 사회를 고치는 거래"

 

사회를 바로잡는 큰 의사가 되자며 친구들과 다짐했던 때가 어느덧 27년 전이다.

의학을 잘 알지 못하던 새내기 시절에 주고 받았던 사회를 바로잡는 큰 의사에 관한 대화.

나는 그런 큰 의사가 이데올로기의 이념 전쟁 속이 아닌 의학 안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 비로소 깨달아

가고 있다. 내가 기존의 의학으로 바로잡히지 않는 난치병 환가가 아니었더라면, 나 역시 이 모든 것을 보지

도 알지도 못한 채 시스템이 흐르는 대로 그렇게 흘러갔을 것이다.

 

지금 의학에 필요한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머리에든 지식과 마음속에 깃든 생각과 이념,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의학을 바로 보고 환자들의 자리를 바로

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것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출처 : 비타민 C 항노화의 비밀 - 하병근 박사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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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비타민C월드

등록일2016-12-09

조회수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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