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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스 폴링 연구소의 이단아

비타민c를 비판하는 논문이 발표되고 비타민c의 유해 여부가 논란이 되면 언론이 자문을 구하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라이너스 폴링 연구소다.

라이너스 폴링이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스탠포드 대학을 떠나면서 여러 기관과 지지자들의 기부를 받아

설립한 이 연구소는, 폴링이 세상을 떠난 후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해 지금은 오레곤 주립대학교 안으로 그

위치를 옮겼다.

 

이 연구소의 책임자로 있는 발츠 프라이가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며 비타민c 비판에 대한 반론을 펼치면,

언론은 이를 라이너스 폴링 연구소의 공식 견해로 세상에 전달한다.

이럴 때면 발츠 프라이의 한마디 한마디에 나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 위험한 곡예를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발츠 프라이가 비타민c를 자신이 걸어온 과학의 눈으로만 보면서 폴링이 세운 연구소의 뜻을 왜곡하고

있는 까닭에 그의 한마디는 언제든 폴링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오류를 지적하는 데는 프라이의 논리가 적절하지만, 그의 논리 속에는 비타민c 고용량 복용이 유익

하다는 생각은 전혀 자리잡고 있지 않다.

 

비타민c 메가도스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도 발츠 프라이의 의견을 높이 사며 여과 없이 이를 앵무새처럼

전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아주 잘못된 일이다. 발츠 프라이는 그램(g) 단위의 비타민c 고용량 복용을

무의미한 것으로 돌리고 폴링의 이론을 반박하는 라이너스 폴링연구소의 이단아다.

 

라이너스 폴링 연구소의 비타민c 일일권장량이 하루 400mg 으로 규정하게 만든 장본인도 바로 발츠 프라이다.

그로 인해  라이너스 폴링 연구소는 폴링의 비타민c 메가도스법을 지지하지 않는 단체로 알려져 버렸는

데, 라이너스 폴링 연구소에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발츠 프라이의 이러한 행동을 납득하지 못하고 프라이의

이론을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발츠 프라이가 오하이오 주립대학교로 와서 강연회를 했을 때 나는 비타민c에 대한 그의 견해를 직접 들을

수 있었는데, 이때 폴링의 주장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그의 비타민c에 대한 시각에 놀랐고 영양학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전달하는 그의 메세지가 철저한 시험관 속 과학으로 일관하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닥터 캐스카트가 왜 발츠 프라이를 강하게 비판했는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발츠 프라이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터무니없이 낮은 용량의 비타민c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라이너스 폴링이 프라이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무덤에서 돌아누울 것입니다.

얼마 전 알토에서 라이너스 폴링 연수소에 관계된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프라이가 그 모임의 주관자였지만 그 사람들 대부분은 그에 대해 격분해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대의에 대한 반역자 입니다."

 

프라이의 강연회 도중 그가 하루 200mg 이상의 비타민c는 체내로 흡수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에 나는

질문을 던졌다.

캐스카트 박사가 전한 바에 따르면 비타민c 흡수량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고 한 개인에 있어서의 비타민c

흡수량도 질병의 유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해 프라이는 비과학적이라는 말  단 한마디로 논리의 전개를 막아버렸다.

과학적인 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진료실에서 수만 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경험한 사실을 비과학적이라는 말 한마디로 일축하는 것을 보면서

이 사람의 과학은 의학을 떠나 있고 의학이 관찰한 현상을 과학으로 풀어볼 뜻도 이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비타민c와 암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때 프라이는 폴링의 이야기를 반박했다.

반박에 대한 논리전개도 전혀 과학적이지 못했고 정작 폴링이 전립선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하며

웃는 그 모습 속에도 과학은 없었다.

그는 폴링을 생각하고 조소하고 있었다.

 

그가 비타민c로 환자를 치료했던 의사들의 진료실에서 나온 자료들을 잘 모르는 것이 분명했지만 그는

폴링의 이야기가 옳지 않다고 얘기했다.

그는 모르겠다고 대답했어야 했는데 아니라고 했다.

의학을 질문했는데 시험관 속 과학으로 받았다.

 

폴링은 9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프라이는 과연 93세에 이른 남성에게 전립선암이 얼마나 흔한 것인지 알고 이런 말을 한 것일까 ?

20년이 넘는 세월을 전립선암을 안고도 건강하게 살아온 폴링의 생의 마지막을 프라이는 조소했다.

93세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며 비타민c 운동을 주도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 대신에

비타민c 고용량으로 복용했으면서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얘기하며 그의 인생을 가볍게 만들었다.

 

노교수가 손을 들어 한마디를 던졌다.

아직 폴링의 이야기가 옳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라고 했다.

먼 훗날에 그 판단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때까지 우리는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프라이는 비타민c 메가도스는 필요 없는 것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확실히 했고, 이 강연회는 호스트

였던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영양학 교수는 강연회를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이제 발츠 프라이의 강연을 통해 하루 500mg을 넘는 비타민c 복용은 쓸데 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램 단위의 비타민c 복용은 전혀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잘 알게 되었습니다."

 

강연회 후에도 나는 그에게 다가가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졌다.

분명 그의 비타민c에 대한 지식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시험관 속을 벗어 나면 그의 논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의학의 길을 점령군처럼 막아서버린 과학자의 논리를 나는 받아들이 수가 없었고, 자신이 가진 패러다임의

한계를 느끼지 못하는 과학자의 오만을 나는 포용할 수 없었다.

슬픈 하루었다.

 

(출처 : 비타민C 항암의 비밀 - 하병근 박사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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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비타민C월드

등록일2017-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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