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의사, 환자, 과학자

오늘은 의학의 보는 시각에 대해 강의를 하겠습니다.

나는 환자의 눈으로 의학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의사가 되고 과학자가 되어 의학과 과학을 모두 공부했지만 나는 항상 환자가 의학을 들여다 보는 그런 모습으로 의학을 연구해왔습니다.

 

1984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해 의사가 되는 길에 첫발을 내디뎠으니 내가 의학으로의 여행을 시작한자도 벌씨 25년이 지났습니다.  의과 대학 시절 많은 것을 배웠고 환자들에게 해줄수 있는 치료법들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 치료법들의 한계도 알게 되었고 그 한계의 울타리 밖으로 넘어가 있는 사람들의 투병도 보았습니다.  해줄수 있는 것이 많지만 해주지 못하는 부분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 한계를 넘어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은 내가 2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을 주류 의학이 가지 않는 곳으로 뛰어들어 혼을 사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후 내게 남은 건 1-2 달라 짜리 싸구려 카푸치노 한잔을 마시는데에도 갈등을 해야하는 가난이었습니다.  그러한 고통 속의 여행은 나를 humble 하게 만들어주었고 내 마음 속이 순수로 남아 의학을 여과 없이 바라볼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시절 나는 대학의 목표를 이렇게 배웠습니다.  첫째가 교육, 두번째가 연구, 세번째가 진료.

환자를 진료하는 일 보다 후학을 교육하고 의학 연구를 하는 것을 더 상위에 두는 모교의 가르침을 나는 지금 이 시간에도 받아들일수 없습니다.  의학은 진료가 최상위 가치를 가져야 하고 그 다음이 교육, 그리고 세번째가 연구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환자는 의학의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의학은 환자들의 고통과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사라져간 수많은 환자들의 희생을 통해 발전해 왔습니다.  유명한 의사, 저명한 과학자들도 모두 그렇게 사라져간 환자들의 희생을 먹고 자란 토양에서 만들어진 부산물입니다. 

 

과학을 공부하고 의학을 다시 들여다 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기존의 과학자, 의학자들이 만들어 가는 새 시대의 의학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학문이란 무릇 과거를 알고 그를 토대로 새것을 알아가야 하는 법인데 이 시대는 오로지 새것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은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이 눈부시게 발전해 가면서 예전의 의학은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던져버리고 세포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습니다.

 

지금 새로운 연구결과라며 쏟아져 나오는 논문들을 읽어보면 이미 반세기 전에 그 효과를 보여준 실험들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현대과학의 언어로 메카니즘을 풀어낸 것일뿐인 것들을 만날때가 있습니다.  의학의 데이터 베이스에 남아있지 않으니 반세기 전에 이러한 실험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해 그런 것이겠지만 새것도 아닌데 논문을 쓴 사람은 영웅이 되려하고 그 논문은 획기적인 현상을 발견한 양 메스컴으로 퍼져 나오려 합니다.

 

세미나에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시대의 대가들이 강연을 한다는 공고가 붙으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렇게 들어간 자리.  논리의 향연이 벌어지고 저마다의 현학이 오고 가면서 토론은 이어집니다.  그곳에 나는 환자의 눈으로 들어갑니다.  M.D., Ph.D. 가 선명하게 새겨진 의사 까운을 입고 들어서지만 나는 치유를 간구하는 모습의 환자의 눈으로 세미나를 좇아갑니다.  세미나마다 나는 늘 외톨이가 되어감을 느끼게 됩니다. 

 

치료법들이 무기력해지면서 현대의학은 지나치게 초라해졌고 한계를 맞은 패러다임에서 자라나는 성치 않은 열매를 지나칠 정도로 예찬하고 있습니다.  환자의 눈으로 볼때에는 별다른 가치도 보이지 않는 곳에도 과학과 의학은 특허를 걸고 포장을 하면서 위대한 발견인양 자찬합니다.  걸린 특허가 몇개고 앞으로 어떻게 개발될 신물질이라고 과대포장을 하면서 연구결과를 치켜세웁니다.  결국 이들은 환자를 염두에 두고 환자들의 치유를 간구하는 연구를 한다기 보다는 자신들의 안위와 명예욕이 일선에 서는 연구를 해가고 있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모든 의사들이 과학자가 되려합니다.  의학 연구를 하는 모든 M.D.가 Ph.D. 가 되려 합니다.  시험관을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의사들, 실험 디자인을 어떻게 해가야하는지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지 못한 의사들 마저 Ph.D. 로 변신하려는 이 시대의 몸부림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세상은 의사들의 치료법이 모두 기존의 과학의 틀에 완전히 들어맞아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불완전한 과학으로, 세포를 바라보는 과학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의학을 재단하려합니다.  사람을 세포의 조합이라고 바라보는 환원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전개된 세포생물학을 의학으로 승화시킨 지금의 의학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의사가 만들어가야 할 의학은 환자의 치유가 일선에 놓이는 의학입니다.  반면 과학자가 만들어가야 할 의학은 치료법의 mechanism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초점을 두고 찾아가는 의학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의사가 찾아가야할 의학은 A를 주면 B라는 효과가 나타난다, A를 주면 B라는 병이 낫는다라는 effect oriented approach로 찾아가는 의학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과학자가 밝혀가야 할 의학은 A를 주면 B라는 효과가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C라는 mechanism 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식의 mechanism oriented approach 여야 합니다.  의사가 해야 할 effect oriented approach는 이러한 치료법이 환자에게 해가 되지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를 전제로 이떠한 효과가 나타나 환자가 치유의 길로 이르게 된다는 것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비록 기존의 과학으로 그 작용 기전을 설명해내지는 못하지만 효과가 있고 이 효과가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이 되었다.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이 과학을 품은 더 큰 의학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주류의학은 스스로를 down grade 해 의학을 100% 과학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작용기전을 밝히지 못하면 치료법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는 기존의 과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라는, 불완전으로 완전을 설명하라는 그러한 모순은 의학의 모습을 초라하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그 화려함으로 겉을 둘렀지만 속은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제 환자의 눈으로 의학을 바라봅시다.  지금 이 시간에도 투병하고 있는 환자들은 그 약이 왜 듣는지를 몰라도, 그 치료법이 왜 효과가 있는지를 몰라도, 그 의학이 어떤 메카니즘을 통해 인체에 작용하는지를 모른다해도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어놓을 그런 humble 한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들 것이라 했습니다. 

이제 의학도 가난한 마음을 다시 찾을 때입니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흘러가기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통이 너무 큽니다.

가난한 의학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세웁시다.

 

마음을 열고 함께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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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닥터하

등록일2009-08-07

조회수6,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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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루파이다

| 201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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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따스한 진심이 전해져 와서 뭉클합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메뚝점프

| 2012-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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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닿는 말입니다. 공감하고 지지합니다.

해인

| 201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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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짜루

| 2019-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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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선생님 마음이 그런 마음으로 가득하셨기 때문에
고통받으시는 분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셨겠지요...ㅠㅠ

그런데 이곳을 알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시간을...
젊은날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서야 찾게 되는 현실이
참으로 서글프고 눈물이 왜 이렇게 흐른는지요...

짜루

| 2019-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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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혼미한 가운데 이제서야 답을 찾고 확신에 찬 믿음이
마음을 설레게 하고 다른이들에게도 도움을 주고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귀한 내용의 글을 통해 스스로도 열심히 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은혜에 감사의 마음을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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