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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C 항암 연구는 어떻게 이루어져 왔나

비타민 c가 암의 예방과 치료에 도입된 것은 수많은 동물실험과 임상 실험을 통한 객관적 결과였다.

비타민 c를 몸에서 직접 만들어 내는 동물의 경우에는 암에 걸리면 비타민 c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고,

비타민 c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인간이나 기니피그의 경우에는 체내에 존재하는 비타민 c가 빠르게 소모된

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시말해, 비타민 c의 암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이 생체가 암에 보이는 반응을 통해

타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주다 포그만이 암세포가 자라고 있는 밭을 중심으로 접근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체의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잘 유지되면 암세포의 증식도 막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비타민 c가 가진 면역기능 항진작용이

암세포가 싹트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암세포가 주위의 정상조직을 허물어뜨리며 자라나는 것도 정상조직의

벽을 탄탄하게 만드는 비타민 c의 작용으로 막아낼수 있다는 것이 비타민 c 복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암연구에 비타민 c가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비타민 c가 발견된 1930년대부터다. 비타민 c는 그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암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이 타진되었고, 1930년대 이후 비타민 c와 암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많은  동물실험과 임상실험이 진행되었다. 이후 8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비타민 c에 대한 연구

결과가 산처럼 쌓이고 있지만 아쉽게도 아직 비타민 c의 암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은 주류의학에 의해 외면 받고 있다

 

비타민c가 암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라이너스 폴링 (Linus Pauling)의 지론과 암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메이요 클리닉의 견해가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설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이 역시 결론을 내지 못했다.

결국 암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이 제대로 진행되기 전까지는, 암치료제로서의 비타민 c의 효능을 알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축적된 연구결과를 토대로 그 가능성을 재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수 밖에 없다.

 

80년에 달하는 비타민 c 연구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처음은 1930년대부터 1970년대로 이 시기에는

동물실험이 주축을 이루면서 비타민 c가 가진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음 시기는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인데, 이 시기부터 비타민 c 연구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연구로 업그레이드 된다. 1971년부터 영국의

외과의사 유안 카메론 (Ewan Cameron)은 비타민 c를 암환자 치료에 직접 사용하기 시작했다.

 

카메론이 그의 임상실험을 토대로 비타민 c 가 암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고 라이너스 폴링이

이에 동조하면서 세상은 비타민 열풍으로 달아 오른다.

카리스마 강한 석학이었던 폴링의 줄기찬 주장에 기존 의학계는 더 이상 비타민 c가 가진 가능성을 외면할

수 없게 되고, 결국 메이요 클리닉은 암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하게 되는데,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

어지는 이 시기를 3기라 할 수 있다.

 

메이요 클니닉은 첫 임상실험에서 비타민 c가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발표했다.

폴링은 메이요 클리닉이 행한 임상실험은 패러다임이 잘못 설정되었다며 재실험을 요구했다.

메이요 클리닉은 이를 받아들여 두번재 임상실험을 시행했지만 역시 비타민 c에는 암치료 효과가 없다는 결

론을 내린다. 폴링은 메이요 클리닉이 제대로 된 임상실험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메이요 클리닉은

폴링의 주장을  묵살한다. 폴링은 카메론이 환자들에게 정용한 패러다임을 메이요 클리닉이 그대로 받아 들여

시행해야 한다고 했지만 메이요 클리닉은 이르 거부했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더 이상의 임상실험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비타민 c를 깊이 있게 다루지 않고 그 겉모습만 흝는 책을 보면 메이요 클리닉의 임상실험을 통해 비타민

c에 암치료 효과가 없음이 입증되었다고 젹혀있다. 그리고 한술 더 떠서 "비타민 c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허무맹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 조심하라" 고 까지 하고 있다.

 

메이요 클리닉에 맞설 힘을 가지고 있던 폴링이 세상을 떠나면서 비타민 c의 임상실험을 이뤄낼 만한 사람도

보기 힘들어졌다. 실험실에서 비타민 c의 효과를 입증할 결과를 아무리 많이 길어 올린다 해도 의학이 받아

들이지 않으면 거기서 끝이다. 라이너스 폴링이 지적한 메이요 클리닉 임상실험의 문제점들은 그들이

주고 받은 편지에도 잘 나타나고 있지만, 결국 임상실험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이제부터 비타민 c의 암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이 제시되어온 지난 80년의 연구 결과를 짚어보고 그에 대한 반

론이 어떻게 제기되어 왔는지를 살펴보면서 비타민 c의 참모습을 확인해 보기로 하자.

 

초창기 비타민 c 연구는 광범위한 동물실험에서 출발했다. 생쥐와 같은 비타민 c 생성능력을 가진 동물을

발암물질에 노출했더니 간의 비타민 c 생산량이 급증했다. 반면 인간과 마찬가지로 비타민 c를 못만드는

기니피그를 발암물질에 노출시키자 기니피그의 몸속에서는 비타민 c가 빠르게 소모되어 바닥을 드러냈다.

또한 기니피그를 발암물질에 노출하고 비타민 c가 결핍된 먹이를 주면 비타민 c가 함유된 먹이를 준 기니피

그 에 비해 암 발생속도가 빨라졌다.

 

이러한 실험은 1940년대에서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진행 되었다.

1969년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딘 버크 (Dean Burk)가 암세포 배양을 통해 비타민 c가 암세포에 강한 독성을

나타낸다고 발표하고, 뒤이어 튤레인 대학 연구진이 비타민 c가 방광암을 예방할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면

서 비타민 c의 항암효과가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딘 버크는 비타민 c의 이로움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비타민 c가  항암제로서 가지는 커다란 장점은 인체의 정상조직에는 아무런 독성을 끼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동물에게 상당히 많은 양(kg당 5g이나 그이상)의 비타민 c를 투여해도 독성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효과적인 항암요법의 미래는 지금 광법위하게 쓰이고 있는 맹독성을 가진 물질에 있는 것이 아나라,

암 세포는 죽이지만 인체에는 무해한 비타민  c 같은 물질에 있습니다. 비타민 c는 이러한 물질의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kg당 5g이면 60kg인 사람에게는 하루 300g이 된다. 이런 메가도스 (mega dose)에도 비타민 c는 동물에게

해가 되지 않았다. 버크가 이야기했듯이 항암제가 가야 할 길은 암조직을 선택적으로 파괴하고 인체에는

무해한 물질을 찾아가는 길이 되어야 할 텐데, 아쉽게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항암제의 맹독성은 여전하다.

 

다만 주다 포크만이 발견한 혈관생성저해제가 암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딘 버크가 얘기했던

항암제가 가야 할 길이 다시 화두가 되고 있는 거은 다행스런 일이다. 암치료에 쓰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

되고 있는 자연의약인 상어연골 역시 버크가 제시한 항암제의 요구조건을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상어연골에는 혈관생성성을 저해하는  물질이 들어 있어서 주다 포크만이 찾아낸 혈관생성저해제와 유사한

항암작요을 기대할 수 있고, 이에 보태어 면역기능을 향상시키는 물질도 함유되어 있어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비타민 C 역시 이런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인체 내 면역력을 상승시켜 암세포를 물리치는 작용은 물론, 암세포

가 정상조직을 허물고 퍼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작용까지 한다. 이와 더불어 비타민 C에는 암세포가 신생혈

관을 생성하는 것을 막는 작용도 있어, 비타민 c가 충분히 존재하면 암세포가 조직을 이루어 사람 몸속으로

퍼져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된다.

 

1950년대 후반 월리엄 맥코믹 (William J. McCormick) 체내의 비타민C 농도가 오랫동안 낮게 유지되면서 생기는

퇴행성 변화가 사람 몸에 암세포가 자라나는 선행조건이 된다고 주장했다. 인체 내 결합조직이 얼마나 탄탄

하게 유지되는냐에 따라 암의 악성도가 결정되기도 하는데 이 결합조직의 상태가 비타민 c에 의해 좌우된다

는 것이 맥코믹이 제시한 근거였다.

 

그는 괴혈병에 걸린 인체조직의 기질적 변화가 주위 조직으로 침투해가는 암세포와 인접해 있는 국소조직의

기질적 변화와 같다는 점을 들어, 암을 비타민 c 결핍에 의한 콜라겐병이라고 해석했다.

암은 조직 내 비타민 c 농도가 4.5mg/100g 이하로 떨어져 있는 장기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이 수치를 넘어

서는 농도의 비타민 c를 가진 장기에서는 거의 자라지 않는다는 보고와 함께, 암환자에게서 극심한 비타민c

손실이 관찰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맥코믹의 주장은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어 1966년 유안 카메론은 그의 저서 <하이알유로니다제와 암 (Hyaluronidase and Cancer)> 에서 암조직을 둘

러싼 정상조직의 상태가 암이 자라서 퍼져나가는 데에 중용한 역할을 한다고 자세히 설명하면서 비타민c가

암치료에 쓰일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인체를 건물에 비유하면, 세포는 거문의 방 하나하나에 들어가 생활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고 결합조직은 철

근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골격이라 할 수 있다. 건물의 골격 중 철근에 해당하는 것을 글리코사미노 글리간,

(glycosaminoglycan), 콘크리트에 해당하는 것을 콜라겐으로 비유 해볼 수 있다.

이 골격이 탄탄하게 유지되면 암세포가 퍼져나가지 못한 다는 것이 카메론의 논리다.

 

암은 하이알유로니다제라는 효소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건물의 철근을 조각내고 골격을 허물어뜨린다.

이렇게 벽을 뚫으면서 암세포라는 이름의 폭도들이 옆방으로 퍼져나간다. 옆방에서 건실하게 생활하던 사람

들은 이 폭도들에게 해를 입고, 폭도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아래층을 넘나들면서 건물은 온통 암세포로

체워지게 된다. 이것이 암세포가 전이하는는 모습인데, 여기서 엘리베이터는 혈관이라고보면 된다.

 

이렇게 철근을 조각내는 물질인 하이알유로니다제를 분비하는 거 외에, 암세포는 콘크리트를 허물어뜨리는

콜라겐 분해효소도 만들어 낸다. 철근이 조각난 마당에 콘크리트까지 물러지면 건물벽이 무너져내리는 건

자명한 이치다. 카메론은 체내의 비타민 c 농도를 높이면 정상세포가 하이알유로니다제 생성 저해제를 많이

만들어내어 철근이 조각나는 것을 막는다고 보았다.

 

암세포가 정상조직을 허물고 퍼져나가는 것을 하이알유로니다제를 무력화시켜 막아낼 수 있다는 얘기인데,

여기에 덧붙여 비타민 c가 콜라겐 생성의 필수요소이고 암환자에게서 비타민 c 양이 크게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비타민 c의 항암작용은 더 큰 설득력을 갖게 된다. 비타민 c 복용량을 늘리면 분해효소의

작용을 무력화할 만큼의 콜라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결국 비타민 c는 암세포가 만들어내는 철근, 콘크리트

분해효소의 작용을 차단해 암세포의 증식을 막아낼 수 있다는 얘기다.

 

카메론의 하이알유로니다제 이론과 맥코믹의 콜라겐 이론을 접목한 라이너스 폴링은 비타민 c가 항암제로서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다은 결론을 얻고 카메론에게 임상실험을 제의한다.

 

이렇게 하여 비타민 c와 암의 역사를 돌아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두사람, 라이너스 폴링과 유안 카메론의

만남이 시작되었고, 그 후 한 사람은 이론가로 한사람은 환자를 대하는 실천가로 역할분담을 하면서 비타민

c를 세상에 알렸다. 지금까지고 이슈가 되고 있는 카메론의 비타민 c 임상실험은 1971년 11월스코틀랜드의

베일 오브 레벤 병원 (Vale of Leven Hospital, Loch Lomondside, Scotland) 에서 그 역사적인 서막을 올린다.

 

(출처 : 비타민C 항암의 비밀 - 하병근 박사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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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비타민C월드

등록일2017-06-01

조회수2,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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