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기

국내에서도 비타민 C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오하이오주립대학교 메디컬 센터 전임의 하병근 박사.
그는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의 이름이기도 하다. 기관지 확장증 등으로 고통을 겪어왔지만 스스로 의사가 되어 치료 방법이 없다고 알려진
난치병을 퇴치하기 위해 환자 진료와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기관지 확장증이란 만성 염증이나 세균 감염이 지속되면서 기관지가 부서지며 확장되어 생기는 병. 많은 양의 객담(가래)이 생기고,
심한 사람들은 혈관이 터져 각혈을 하기도 하고 호흡곤란을 겪는 고통스런 병이다.
하병근 박사는 어려서부터 기관지 확장증뿐만 아니라 코와 귀 등 온몸에 염증이 계속 생겨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염증 때문에 양쪽 코는 한국에서 수술을 했고 양쪽 귀는 청력이 떨어져 미국에서 보청기를 해야했다. 늘 객담을 뱉어내야 하고 숨이 차 활동하기가 쉽지 않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숨을 쉬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는 숨을 쉬는 순간순간 고통을 겪는 것이다.
의사가 되어 내 병을 치료하겠다는 희망
하병근 박사는 어렸을 때부터 계속된 난치병과 고통스런 전쟁속에서 자연스럽게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육신의 고통을 이겨내고 악착같이 공부했다.
"고교 시절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담당 선생님이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한용철 선생님이었는데, 입원을 해서도 병실 불을 밝히고 공부를 하자 대견해하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죠. 내가 서울 대학교 의과대학에 들어가 의사가 되면 내 병을 고칠 수 있느냐고 여쭈니까, 웃으시면서 '그럼, 들어만 와'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훗날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기는 했지만요.(웃음)"
어려서부터 숱하게 병원을 드나들면서 만난 의학, 의사, 하얀 가운은 그에게 '나처럼 힘들어하는 환자들을 치유하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심어주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강렬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이 있는 한 불가능은 없었다.
"중학교 시절, 사람들은 내 몸이 약해서 고등학교에 가면 공부를 잘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고등학교 가서도 변함없이 앞서나가자 고2가 되면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2 때도 잘하니까 모든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는 고3이 되면 건강 때문에 못 따라갈 거라 했습니다.
하지만 고3 때도 나는 항상 앞서나갔습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해 걱정하는 수험생들이 있다면 한 가지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가슴속에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꿈과 그 꿈을 향해 가는 뜨거운 희망을 가지라고요. 힘차게 살아 꿈틀거리는 꿈과 희망은 육체적 핸디캡을 뛰어넘고도 남습니다."
결국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그는 그 공을 모두 어머니에게로 돌렸다.
하루에 두 번씩, 아들에게 따뜻한 도시락을 먹이기 위해 학교를 찾으셨던 어머니. 아침이면 아들의 가방을 머리에 이고 도로까지 나와 아들을 배웅하고, 밤이면 버스정류장까지 마중을 나와 아들의 가방을 받아 함께 집으로 돌아가시곤 한 어머니... . 그의 어머니는 건강하지 못한 아들이 당신 책임이기라도 한 듯 아들의 손을 잡고 전국의 유명하다는 명의들을 찾아다녔고, 번번이 상처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치료법을 찾아 나섰다. 어머니의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그도 '세상 어딘가에는 나를 치료할 의학이 살아 있을 것' 이라는 생각을 하며 힘찬 투병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기나긴 세월을 투병하다 보니 힘든 순간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단 한순간도 투병을 포기한다거나 내가 가진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 본과 3학년 겨울, 한 달여 동안 시험이 계속되던 시기에 온 입 안에 궤양이 생겨 목까지 번져나갔습니다.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먹지 못하니 앉아 있을 기운조차 없었죠. 그래서 공부해야 할 것들을 노트에 적어 온 벽에 붙여놓고 누워서 벽을 바라보며 공부했습니다. 부산에서 올라오신 부모님의 간호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시험을 치룰 수 있었죠."
비타민 C와 글루타치온의 희망
하지만 의대를 다니면서도 그는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의 치료법을 찾을 수 없었다.
예과 2학년 때 미리 사 본 본과 책에는 그의 병에 대해 '치료법 없음'이라는 차가운 선고만 적혀 있었다. 1990년 의대를 졸업하고 기초의학 공부와 임상경험을 마친 후 1993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신이 직접 치료법을 찾아나서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밤낮없이 연구하던 그가 만난 것이 비타민 C와 글루타치온, 강력한 항산화물질인 이 두 가지가 난치의 만성 소모성 질환 환자와 염증 질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다는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 그 후 비타민C와 글루타치온은 그의 의학을 끌고 가는 양대 축이 되었다.
"비타민 C를 많이 먹으면 신장결석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병적 상황이나 약물, 그리고 노화과정을 만나게 되면
체내 글루타치온 양이 줄어들게 되죠. 이럴때 글루타치온 생성을 촉진시키면 인체가 병적인 상황으로 들어서는 것을 막아줄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 비타민C에 대한 글을 쓰고 책을 펴냈다. 2003년엔 한국으로 돌아와 의사들과 일반인들을 상대로 강연도 했다. 그런데 시차 적응도 안 된 몸으로 무리한 탓에 몸의 이상이 느껴져 서둘러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자신이 의사로 있는 오하이오주립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난폭한 상처를 입었다. 의사들이 기관지 내시경 검사를 하다 폐 속의 동맥을 터뜨린 것이다. 의사들은 터뜨린 동맥을 잡는데 5시간을 허비했고, 
그는 이틀간 의식을 잃은 채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마침내 눈을 떳을 때, 그는 산소통을 짊어지지 않으면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사람을 거의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사건을 앞에 두고도 그들은 미안하다는 한마디 없었습니다. 의료사고 이후 나는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신음했습니다. 수시로 생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고통에 적응이 되어 웬만한 고통은 내색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 사건은 내 몸과 마음을 부수어 놓았습니다. 그날의 의료사고 이후 내게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내 삶을 의학에 빼앗겨버린 것 입니다. 원망과 절망이 생겼고, 왜 내게 이러한 일들이 생겼나 하는 회의가 나를 파괴해갔습니다. 하지만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제 다시 
내 삶을 찾기 위해 일어서고 있습니다."
아내와 딸이 되찾아준 희망
이번에는 아내와 딸이 그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었다. 박사과정 유학 시절인 1993년에 만난 아내 유정현 씨는 당시 피아노를 전공하는 오하이오주립대학교 학생이었다. 한인음악회에 갔다가 아내를 발견하고 여러 사람을 통해 만나려고 시도했지만 처음엔 잘되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누가 음대 여학생을 소개시켜준다고 해 혹시나 하고 이름을 물었는데 지금의 아내였다. 인연임을 직감한 그는 그녀와 반년의 데이트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사고 후 혼자였다면 도저히 버텨낼 수 없었을 겁니다.흔들림 없이 제 곁을 지키며 헌신한 아내의 역할이 컸지요. 
아내는 나약하게 주저앉으려는 내게 활기차던 예전 모습을 일깨우며 나를 세워주웠습니다. 사고 후 많은 일을 아내의 도움 없이는 할 수가 없어졌습니다. 아내와 가족들의 헌신,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많은 사람의 사랑으로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지요."
하나밖에 없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딸, 지안이도 언제나 그에게 희망을 일깨워준다. 의료사고 후 그는 모든 것을 '몸이 좀 더 나아지면' 이라는 말로 물리며 내일을 기약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거니는 것도, 가까운 공원을 함게 산책하는 것도 모두 다음으로 미뤘다.
그러자 가족 모두가 점점 외롭고 쓸쓸해졌다.
어느 날 그런 아빠에게 지안이가 말했다. "아빠, 우리는 인생의 모든 순간을 즐겨야 하는거예요(Dad, You have to enjoy moment of your life)."
"순간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은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그 후 저는 은둔의 삶을 걷어내고 더욱 활기차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에는 플로리다의 데이토나 비치에 다녀왔습니다. 무용을 좋아하는 지안이가 출전하는 전국대회가 열리는 곳이어서 온 가족이 일주일간 긴 여행을 했습니다. 
산소통을 차에 싣고 15시간 이상 걸리는 길을 차를 달리며 흥겨운 마음으로 다녀왔습니다. 이제 저는 약한 모습을 애써 감추지 않고 세상으로 나서 생의 모든 순간을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하병근 박사가 의사가 된 지 20년이 된다. 그는 20년 동안 말 그대로 목숨 걸고 공부하며 난치병 환자들을 도울 치료법을 연구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의학이 세상으로 나가도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병근 박사는 미국과 한국에 자신의 연구소와 클리닉을 열 계획이다. 그리곤 1년을 반씩 나눠 미국과 한국에 체류하면서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을 어린아이들과 환자들을 치료할 꿈을 꾸고 있다. 요즘 한국에서 이를 위한 후원회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하병근 박사는 말한다.
"뒤마는 인간의 모든 지혜는 기다림과 희만, 단 두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제게는 꿈과 희망이라는 두 단어가 험난한 인생길을 지켜주었습니다. 저는 배러 레이러(Better Later)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기에 우리는 고통 속의 오늘을 살아낼 수 있음을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출처 여성조선